화매리
석보면 소재지에서 약4킬로쯤 남쪽으로 떨어진 곳이다.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탓으로 주위에서 흐르는 물들이 이 곳에서 합하여 흐른다. 해서 이 내를 화매천(花梅川)이라고 하며 이로 인하여 붙여진 마을의 이름이다. 이 마을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용소(龍沼)와 느티나무, 그리고 절골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홀뭇골 동쪽에 있는 소가 용소인데 위는 절벽이고 그 아래로는 두 길이나 넘는 바위가 있다. 이 곳에 김수영 선생이 정자를 세웠다. 용소는 흔히 용못이라고 한다. 느티나무는 꽃매 마을 어구에 있는 두 아름 정도의 큰 나무인데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다. 해마다 정월 열나흘 밤이면 제사를 모신다. 절골은 사동(寺洞)으로 뒤쳐 쓰기도 하는데 뱀과 걸림을 보이는 땅 이름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그 사연은 절골 마을의 이야기로 가름한다. 한자의 소리로 볼 때, 뱀 사(蛇)자나 절 사(寺)자나 같은 소리로서 겹치기 효과를 드러낸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택전리
석보면 소재지 남쪽으로 5km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택전리는 옛날에 집을 지을 만큼의 터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 대부분이 평지로 담배와 고추의 농사가 잘 된다. 자연마을로는 땍밭골, 검소바우, 민실, 솔두들, 수구내미, 운수내미, 압평재, 초막골, 턱걸바위 등이 있다. 땍밭골마을은 돌이 많고 밭이 넓지 못하여 작은 면적의 뙈기밭이 많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마을 이름도 땍밭골, 땍박골로 불렀으나 석보면에 편입하면서 택전으로 개칭되었다.
포산리
마을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을 때에 산에는 산머루- 이지역 말로는 구머리라 하는데 산머루가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논과 밭이 있기는 하나 물을 댈 수 가 없기 때문에 논농사가 짓기가 어려웠다. 본래는 진보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에 행정 구역을 고칠 때 화매동(花梅洞)의 일부를 따다가 합하여 포산리라 하여 석보면에 들게 했다. 이 마을에는 원님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한마디로 하여 이 마을에 옛적 원님이 앉았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사연은 원터 마을에서 풀이한 이야기로 가름한다.
삼의리
영덕군 창수면 지품면을 경계로 하여 높은 산이 가로 막혀 바다 바람이 불어 오다가 삼의산과 노루산에 걸려서 영양에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 활엽수가 많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우산과 같이 위가 벌어져서 자라는 관목의 모양을 한 나무가 많다. 산하곡(山下谷) 혹은 삼의곡은 본래 진보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높은 산 밑이 되기 때문에 산밑골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화매동의 일부와 석보면이 요원동 일부를 합하여 삼의골이라고 불렀으며 석보면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산밑골이란 소리를 바꾸어 한자로 뒤쳤을 때 삼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