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터(院一)
- 작성일
- 2017.01.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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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동에서 제일 낮은 곳에 있는 마을로 조선조에는 이 곳에 원집이 있었다고 한다. 또 이 곳이 원터라 하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옛날 이 근처 고을의 원님이, 부인이 있는 영해의 속실로 가는 도중에 앞이 훤히 트인 이 곳에 앉아서 잠시 다리를 쉬고 있었다. 그 때 고을에는 심한 가뭄이 들어서 온 들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원님은 이 곳에 앉아 들을 바라보면서 가뭄을 걱정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결에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나서 "어르신네 내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몇 달 전의 큰 비로 원님이 앉아 계신 뒷산에 산 사태가 났는데, 그 때 내 뼈들이 두 곳으로 나누어져 묻혔습니다. 흩어진 내 뼈를 찾아 한 곳에 묻어 주시면 비를 내려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꿈에서 깨어난 원님은 여우가 가리킨 곳에서 그 뼈를 찾아 거두어 양지 바른 곳에 정성껏 묻어 주었다. 그 후에 가뭄은 걷히고 비가 내려서 풍년이 들게 되자 주민들은 원님이 앉아 있던 곳을 원터라고 불렀다 한다(신현부(51) 제보).
여기 원터는 광제원(廣濟院)을 가리킨다.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고 세운 것인 만큼 병 치료뿐만 아니라 가뭄을 함께 걱정한 계기가 되었으니 사람들로서는 기억할 만한 장소가 된 것이다.